제7차 세계정책회의 외교장관 만찬사(비공식 번역본) – 상호연계된 세계에서 한국의 역할 –

몽브리알 소장님,

키비니에미 전총리님,

투르키 알 파이잘 왕립연구소장님,

맨리 전부총리님,

기구 위원장님,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지난 주말 영국에서 최초의 한영전략대화 및 아프간 관련 각료급 회의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 계기에 채텀하우스에서 세계와 동북아 정세에 관한 기조연설을 하였으며, 이 연설에서 저는 지난 몇 년간에 걸쳐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위기의 양상이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에 비견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관찰은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의 공통된 생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한 예로서 브레진스키 박사도 금년 7월 Foreign Policy를 통해 ‘우리는 지금 거대한 혼란과 분열, 그리고 불확실성의 세계를 목도하고 있다. 하나의 집중적인 위협이 아니라, 거의 모두를 향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위협들이 그것이다.’라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냉엄한 현실은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시작하여, 10월 ASEM 정상회의와 11월 APEC, ASEAN+3, EAS, G-20 정상회의 등 최근 개최된 일련의 다자 정상회의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는데, 이러한 일련의 회의에서는 기후변화ㆍ교육ㆍ에볼라ㆍ우크라이나ㆍ외국인 테러전투원 문제 및 ISIL, 무역자유화 및 금융 협력, 개발협력, 재난구조, 인권 및 인도적 지원 그리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함한 WMD 의제들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상호 연계된 이 시대에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인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보다 근본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는 세계질서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현상들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바로 25년 전, 유럽에서는 냉전 종식의 서곡이자 독일통일과 유럽통합, 그리고 CSCE의 OSCE로의 전환을 이끌었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있었습니다. 마침 같은 시기에 지구의 다른편 아태지역에서는 한국과 호주 등이 주도하여 APEC이라는 새로운 지역통합 메커니즘이 출범하였습니다. 동북아ㆍ동남아ㆍ대양주와 태평양의 서안이라는 거대한 지역을 연결하는 단일한 지역 경제협력체가 탄생한 것입니다. 또한 그 무렵 한국과 아세안은 대화상대국 관계가 시작되었는데, 바로 이번 주 부산에서 대화상대국 관계수립 25주년을 기념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통합과 협력을 향한 이 같은 중대한 움직임이 “통합되고 자유로운 유럽”과“아시아·태평양의 시대”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이와 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탈냉전기의 국제안보환경 속에서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하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공산권내 변화의 바람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북방정책을 통해 소련, 동유럽, 중국과 수교하였으며, 남북한 유엔 가입을 성사시킨 것입니다.

그 이후 상당 기간 지속된 안정되고 번영된 역내 및 세계 질서에 힘입어 한국은 성숙한 민주주의와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찾을 수 있다면, 오늘날 한국과 전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난제들은 커다란 도전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지혜와 통찰을 한데 결집하면 이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제7차 세계정책회의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세계정책회의는 글로벌 과제들과 세계 주요 지역 이슈들을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정평이 높습니다. 금번 회의가 지정학적 도전과 지경학적 도전 속에서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동북아, 새로운 세계를 열어나가는 것을 핵심 외교목표로 삼고 있는 한국외교에게 큰 지혜와 영감을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오전 박근혜 대통령님의 기조연설과 외교안보수석의 발표를 통해서 범세계적인 도전과 지역적 변화 속에서 한국 정부가 펼치고 있는 신뢰외교와 우리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이미 들으셨기 때문에, 저는 이 자리에서 한국이 직면한 도전의 성격과 역사적 맥락, 그리고 상호연계된 세계에서의 대한민국의 역할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내외귀빈 여러분,

내년은 2차대전 종전 70주년이자 유엔창설 70주년입니다. 또한 현대사에 유례없는 가장 긴 정전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이 분단 70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환기적 도전은 마치 3중 파고가 동시에 몰려오는 양상과 비견됩니다.

첫 번째 파고는 한반도에서 오고 있습니다.

가장 급박하고 직접적인 도전은 바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입니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은 헌법을 개정하여 스스로 핵무기 보유국임을 천명하고 핵무기 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와 다양화, 그리고 운반수단의 고도화가 지속되고 있고, 이는 북한의 핵능력을 이란보다 훨씬 위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도전은 새로운 젊은 지도자가 등장한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 입니다. 우리가 이 복합적인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여타 기이한 행동들에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올해 북한의 행동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결의 채택 등 국제사회의 동향에 대해 북한이 전례 없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3차에 걸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당시의 반응보다도 민감한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고 하겠습니다. 또 북한은 통일 대전을 치루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습니다.

인권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내부 모순들은 한반도가 처한 냉엄한 현실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지속적 평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할 필요성을 한 층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북한이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하여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도록 변화를 유도하고, 필요시 압박하는 것입니다.

20여년 전 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불어온 변화의 바람은 미얀마까지 왔습니다. 미얀마가 아세안가입 17년 만에 최초로 금년에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과거 적국이었던 나라들도 참가한 아세안+3와 EAS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점은 북한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파고는 동북아에서 일고 있습니다.

그 파고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그리고 한반도 주변 등의 지정학적 대치점에서 거칠게 일고 있습니다. 북핵문제, 영토 및 역사 갈등, 민족주의와 같은 오래된 문제는 물론 해양안보, 우주 및 사이버 안보와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고 역내 많은 국가들의 양자 관계 또한 긴장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향들은 일종의 현상 또는 증상일 뿐이며, 그 중심에는 역내 새로운 안보 지형의 형성이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에는 부상하는 중국, 전후 체제 탈피를 추구하는 일본, 동진 정책을 추구하는 러시아,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도모하는 미국, 격랑에서 살아남으려는 북한 등, 크고 작은 역내 행위자들이 포함되며, 이들은 때로는 서로 상충하는 꿈과 비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자국의 지위와 영향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도전들을 다루어 나가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는 가운데, 문제는 역내 평화와 번영이 달성되도록 어떻게 서로 다른 꿈들을 조화시켜나가느냐 입니다.

세 번째 파고는 앞서 말씀드린 글로벌 과제들이 한국에 제기하는 도전입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최근 에볼라 사태와 관련하여 어느 누구도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야기한 데에서 잘 나타나듯이, 오늘날 누구도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후변화, 빈곤과 개발, 전염병, 테러, 대량파괴무기 확산 등 이슈로부터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특히 G20의 핵심 멤버국가이자 유엔의 3대 이사국, 즉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인권이사회 이사국인 대한민국으로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 아침 박 대통령께서 기조연설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만, 외교장관의 입장에서 이러한 역할을 보다 큰 틀에서, 그리고 지구촌 행복이라는 정부의 외교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하여 설명드린다면, 박근혜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Globalism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EU, 그리고 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터키 그리고 호주로 구성된 MIKTA, 비제그라드 그룹, 북유럽 이사회 등 중견국 협의체들과 글로벌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한국은 많은 글로벌 이슈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먼저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한국에 본부를 둔 글로벌기후기금(GCF) 및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GGI)을 통해 내년도 파리 COP-21을 앞두고 선후진국간 가교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보건 차원에서는 에볼라 대응을 위한 의료 인력을 파견코자 하며, 내년도 글로벌 보건구상 고위급 회의를 주최할 예정입니다. 유럽에서 오신 분들 중에는 에볼라 발생 지역에 의료진을 파견하는 것이 군사작전을 하는 것보다도 더 복잡한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한국은 “보건 외교”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발협력 분야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하나로서 정착되고 있는 부산글로벌 파트너쉽을 주도하고 촉진시킴으로써, 내년도 Post-2015 개발 의제 합의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우리의 의지는 과거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20세기에 한국은 30여 년간의 강점기, 동족상잔의 전쟁, 극도의 빈곤 등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커다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한국은 증가하는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고, 우리의 경험을 이를 필요로 하는 이들과 공유해야 할 때라고 믿고 있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인류의 역사는 부침 및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 왔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인간 존엄과 자유를 위한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냉전 시대가 열전 시대보다는 낫고, 탈냉전 시대가 냉전 시대보다 분명히 더 낫다고는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민주주의 확산과 경제발전, 국제평화와 인간안보 측면에서 이루어진 진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여전히 불우한 이들이 번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과거 도전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바꾸었듯이, 흩어진 점들을 연결하고 약한 고리를 연결하기 위한 노력에 기꺼이 동참하고자 합니다.

이제 3주 후면 우리는 새해를 맞이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한국민들에게 있어서 2015년은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한국에게 진정한 광복은 한반도 분단 극복에서 완성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통일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드레스덴 연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비핵국가로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희망의 등대이자, 모든 주변국들과 평화를 유지하며,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이자 지역 및 세계 평화와 번영의 촉진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3개의 파고를 넘어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로 나아가는 여정에 오늘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동반자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