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4차 세계대전은 시작됐다

01/11/2018

Maeil Business Newspaper & mk.co.kr

제4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듯한 분위기였다. 최근 열린 세계정책콘퍼런스(WPC)에서 전 세계 오피니언 리더들은 트럼프발 무역전쟁을 놓고 마치 세계대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우려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가 모로코 라바트에서 지난 10월 26일부터 3일 동안 주최한 이 행사 기간 내내 트럼프발 무역전쟁은 최대 화두였다. `총성 없는 세계대전`이 그대로 전달됐다.

3차 세계대전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일컫는다면 요즘 무역전쟁으로 대표되는 국가 간 갈등은 제4차 세계대전이라 불릴 만했다. WPC 현장에 등장한 중국 유력 인사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때문에 각국에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국가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고 항변했다. 유럽인들은 G2 간 무역전쟁이 결국 `투키디데스의 함정`처럼 실제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4차 세계대전 포문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열었다. 미국 입장에선 엄청난 연구개발(R&D)을 통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인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등 첨단기업을 키웠지만 이 기업들이 이룬 성과를 중국이 빼앗아가고 있다는 판단이 강하다. 기술 도용 등으로 미국 일자리 수백만 개를 잃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더욱이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다급함이 겹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더 내세우고 있다. 다음주 미국 중간선거는 트럼프 재선이냐, 탄핵이냐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트럼프 입장에선 정치적 생사(生死)의 변곡점에 서 있는 셈이다.

 

G2 무역전쟁 결과 중국 3분기 경제성장률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였다. 위기감을 느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7년 만에 만나 정상회담을 할 정도다. 동북아시아 패권을 노리던 두 나라가 이젠 살아남기 위해 동맹에 나선 셈이다. G2 무역전쟁 여파로 위기에 몰리는 중국과 관계가 더 어려워지면 일본 경제도 후폭풍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중국은 일본 최대 수출시장이기 때문이다. 일본 입장에선 중국과의 동아시아 헤게모니 쟁탈전 대신 긴장 해소를 통해 군비 경쟁을 줄이고 재정적자도 축소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 속에서 일본이라도 우군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 맞아떨어지면서 이번 중국과 일본 간 정상회담이 성사된 셈이다.

 

유럽의 불안도 커지는 분위기다. 미국 IT 기업을 비롯한 첨단기업들의 약진으로 유럽 대표 기업들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급기야 유럽 국가들은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에 대한 과세에 나서고 있다. 모든 걸 다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럽을 대표할 만한 세계적 기업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미국 보잉과 맞서왔던 에어버스마저 전 세계 항공 시장에서 점유율을 잃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이 유럽 앞마당인 아프리카로 경제영토 확장을 꾀하면서 유럽은 이미 혼수상태나 마찬가지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금융위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 상황, 유럽 각국의 포퓰리즘 등이 겹치면서 유럽은 힘을 잃은 채 재기도 못하고 있다.

 

신흥국은 G2 무역전쟁과 미국 금리 인상 여파로 또다시 금융위기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무역전쟁에 따른 중국의 충격에서 신흥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재닛 옐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지난달 세계지식포럼에 참가해 연방준비제도가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신흥국 상황을 여러 변수 중 하나로 감안한다고 전했다. 뒤집어 말하면 신흥국은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신흥국보다는 미국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특히 기술 우위를 내세워 전 세계 지배력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란 신조어를 쓸 정도로 위기감이 많았지만 혁신기업의 활약에 힘입어 수년째 호황을 누린 이점을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한국에선 경기 침체를 이겨낼 세계적 혁신 기술과 기업이 나오고 있는지 불확실하다. 몇 년째 혁신경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쇠퇴의 길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만 앞선다. 무역전쟁에 대비해 주요 국가를 우군으로 만들기보다는 친구마저 잃고 있는 건 아닌지도 걱정이다.

 

[김명수 지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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